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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리의 이야기 03|기억의 탄생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요한일서 5장 13절

    1992년, 내 나이 여섯 살.

    아직 죽음이라는 개념조차 생기기 전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나의 이야기는 바로 그 무렵부터 시작된다.

    어느 날 엄마는 공책을 펼쳐 주시며 요한일서 5장 13절을 고사리손으로 직접 쓰게 하셨다. 그리고 나에게 영생에 관해 말씀해 주셨다.

    “우리는 죽지 않을 수 있어.”

    하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죽음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했던 여섯 살의 나에게 그 말씀은 이렇게 입력되었던 것 같다.

    ‘아, 나는 죽지 않는구나.’

    그렇게 영생에 관한 말씀이 내 기억의 가장 오래된 자리에 남았다. 그러나 훗날 나는 크게 세 번이나 죽음의 문턱을 경험하게 된다. 작게는 그보다 더 여러 번이었다.

    ‘하….’

    엄마와 무료 성경 신학원

    내가 여섯 살이 되던 해, 남대문시장에서 일하시던 아빠가 창고로 사용하던 건물의 쓰레기통에서 무료 성경 신학원 전단지를 발견하셨다. 그 전단지를 계기로 부모님은 신학원 과정을 배우게 되었다.

    나는 엄마를 따라 비유풀이 강의를 들었다. 강의실 맨 앞자리, 난로 옆에 앉아 있었던 기억이 난다.

    강의를 맡았던 부부 강사님은 신학원 안의 작은 쪽방에서 아들을 키우며 생활하고 있었다. 월·화·목·금요일에는 강의를 했고, 새벽에는 우유를 배달하셨다. 나는 그 작은 쪽방에서 동생들과 함께 놀았다.

    서울역 신학원 16기부터 19기까지 함께했던 사람들은 모두 가족처럼 느껴졌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24기까지도 어렴풋이 떠오른다.

    고사리손으로 접었던 전단지

    나는 청년회 이모, 삼촌들과 함께 가파른 아현동 골목을 다녔다. 무료 성경 신학원을 알리는 전단지를 집집마다 꽂았고, 작은 손으로 전단지를 접기도 했다.

    어린 내 눈에 신학원 입구에 쌓여 있던 전단지는 산처럼 높아 보였다.

    한 달에 한 번은 인덕원에 있던 ‘ㄱ’자 모양의 성전에도 갔다. 성전 구석에서 동생과 놀고 있다 보면 어느 순간 주기도문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예배가 끝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가장 짧은 성경 구절을 찾아서

    엄마는 성경 구절 하나를 외울 때마다 용돈 100원을 주겠다고 하셨다.

    하지만 내가 외운 성구라고는 창세기 1장 1절과 욥기 1장 1절 정도밖에 없었던 것 같다. 어린 나에게 성경은 너무 어려웠다.

    나는 조금이라도 짧은 구절을 찾기 위해 성경을 이리저리 뒤적였다. 그러다가 오바댜 1장 1절에서 다음 문장을 발견하고 무척 기뻐했다.

    “오바댜의 묵시라.”

    그 문장 뒤에는 동그라미처럼 보이는 표기가 있었다. 나는 그것을 보고 일곱 글자가 한 절의 전부라고 우겼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부터였을까.

    ‘활자는 나에게 어렵다.’

    나는 어린 마음에 그렇게 스스로 입력해 버렸는지도 모른다. 가장 짧은 성경 구절을 찾아 헤매던 작은 기억이 오히려 책과 글을 어렵게 느끼게 하는 시작이 되었을 수도 있다.

    내 안에 남은 최초의 문장

    그럼에도 내 기억의 시작에는 성경 말씀이 있었다.

    죽음을 알기도 전에 들었던 영생이라는 말, 고사리손으로 공책에 적었던 요한일서 5장 13절, 신학원에서 뛰어놀던 동생들, 전단지를 접던 작은 손, 예배의 끝을 알려 주던 주기도문 소리….

    그 모든 장면이 모여 지금의 나를 이루었다.

    훗날 내가 여러 번 죽음의 문턱을 지나게 될 줄은 그때의 나는 알지 못했다. 다만 여섯 살의 내 마음에는 한 문장이 아주 선명하게 새겨졌다.

    ‘아, 나는 죽지 않는구나.’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내 삶의 첫 장면이자, 기억의 탄생이었다.